냉전기 게르만의 근성 대폭발 부제: 냉전기 약소국의 근성 International Politics


엔하위키에다가 끄적인걸 올립니다.



현 체제의 맨 위에 배치된 군사력은.... 심지어 그 맨 아래 있는 인민의 의지에 바탕을 둔 훨씬 더 거대한 세력과 충돌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나무망치 대시 홍학으로, 공 대신 고슴도치로 크로케 경기를 했던 것처럼 이 냉전 경기에서는 초강대국들이 인질[로 잡힌 약소국가]을 무생물로 착각했지만, 이들은 지배 아래에서도 활기차게 살아나와 도처에서 거침없이 계획과 야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조너선 셸



 이번주 (적어도 오늘 까지는) 국제관계학 강의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국제레짐과 관련해서 중간에 '냉전에 관한 주제'가 나오게 됬지요. 의례 한국인들이 그다지 되새기고 싶지않은 '20세기'의 역사로 인해 대다수가 냉전에 대해서 그렇게 좋은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걸 노리시고 교수님은 질문하셨지요.


"여기 냉전시대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


좌중은 모두가 조용히 있었습니다. 자기의견은 하는사람만 (저같이) 계속하는 구조인데 교수님이 미국식의 활발한 강의를 바라시기도 합니다. 저 혼자 손을 들고 있었지요. '물론 저를 보시지 못하시고 지나치시다가 보고선 슬쩍 놀라는 듯하며 이유를 물었습니다.


"냉전이라는 환경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예상이상의 성장을 할수있던것 아닐까요."


뭐... 이후 교수님께서 정확히 이런 "냉전만은 안락함"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지요.


 냉전이라는 환경은 실제 국제관계환경중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초강대국이 약소국의 이익과 안보를 보장해주고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소비재를 지원하며 국가가 안정적일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심지어 자기 이익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도요." 소련은 동유럽 국가에 대해서 "동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지원을 하였고 미국또한 마셜플랜을 통하여 유럽에 막대한 자본을 퍼부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냉전이라는 말 자체에서 이유를 찾을수 있다고 봅니다.



말그대로 서로간의 직접적인 전쟁이 불가능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자국에 대해서 한개국이라도 더 우호적인 상대를 늘려야 합니다. 이에 대표적인것이 아프리카나  동북아시아의 소국등에 실제적인 힘이나 국제관계에서 중요도가 떨어지더라도 "소련이나, 혹은 미국에게" 넘어가지 않기위해 여러곳에 추파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런현상은  "약소하다."라는 의미는 강점으로 작용할수 있는기회를 주고 자국의 이익을 누리며 심지어 "이런 고래싸움을 고착화 시키는 "비범한"모습을 보여줄수 있게합니다. 냉전은 우리의 생각처럼 두 강대국의 경쟁이 아닌 수많은 관계국들의 관계에서 형성된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이미 확보된 "우호국"이나 "동맹국"에도 적용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몇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지요. 오늘의 주제인 독일의 양강대국 빅엿먹이기 입니다. 



-중략-

그렇게 해서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이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원했는데도 냉전의 긴장을 풀기 위한 (미국과 소련의) 초기의 노력은 실패했다. 약소국가들의 행동이 초강대국을 대결상태로 고착시켰기 때문이다. 약소국들의 행동이 초강대국응 대결 상태로 고착시켰기 때문이다.

-중략-

주미 소련대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어었다. 우리 동맹국들은 우리 양측(미국과 소련)에 정대적으로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논의하려는 일조차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냉전의 역사" 존 루이스 개디스


냉전기 초반 5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45년이전의 독일은 유럽에서 매우 강대한 국가였습니다. 이것은 미국이나 소련이 독일이 어느한측에 기운다는것은 매우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였던것입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동맹을 생각해봅시다.) 이런점에서 독일은 분리는 이러한 상황을 감당하기 힘든 양자(미국과 소련)에 의한것 이었습니다.


이것은 대전이후 동독과 서독이 붕괴할 경우 언제든지 "과거의 적이 미래의 적의 지배하에 노이리라는" 양대국의 걱정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시 서독의 총리 아데나워(사진1.)은 "독일의 분단이 지속되기를"바라며 "독일 통일이 몰고올 불안을 각오하는니 차라리 한쪽만이라도 미국과 서유럽의 다른 서방국가와 긴밀히 제휴하면서 번영"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1. 뭘봐? 시@ 나 분단됬다고 @나 만만히 보는거냐? Konrad Adenauer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1876~1967>


결국 소련이 통일을 목적으로 서독과 협상을 시도한다면 거절은 하지 않겠지만(거절하면 정권의 생명이 끝이니) 그 협상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문제는 아데나워의 주경쟁자이던 사회민주당 쿠르트 슈마허가 NATO를 탈퇴하고 냉전에서 중립을 지킨다 하더라도 독일 통일을 위한 협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자




미국과 아데나워에게 충공깽을 선사합니다..





아데나워는 이를 압력수단으로 다른 NATO국가들이 독일 통일 문제에 대하여 거부하도록 하게 했습니다. (아이고....)


결국 1959년



"소련지도자와 "협상을 타결할"수도 있지만 "우리 동맹국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을것이며,따라서 비록 받아들일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을 고려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아데나워는 끝장이기 때문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방미한 후르시초프에게


물론 다이나믹 동독의 경우는 이런 약소국의 도를 넘는 깽판이라 쓰고 삥뜯기라고 읽는 행태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사진2.이제 련방은 맑스도 레닌도 없다우>



<사진 2.5 근성의 게르만 싸나이 올브리히트>


1953년 비슷한시기 동독의 울브리히트정권이 '박살'날뻔한 위기에 처한적이 있습니다. 이 위기로 크렘린의 지도층들은 "어떻게 하면 쟤네를 먹여살리나"에 고민합니다. "겨우 대조국 전쟁 끝난지 10년만에요."

결국 크렘린은 울브리히트정권이 버틸 수 있는 데 필요한 무엇이든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울브리히트 역시 원할때면 언제나 소련을 협박할 역량을 가진 10점 만점의 12점의 싸나이! 배째라근성의 개념찬(그 "개념"말고)게르만 민족이었습니다.

56년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지자 후루시초프에게 동독은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결과가 초래하게 될것이며 ...... 적이 공작하기가 더욱 수월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더 많은 소비재"를 요구합니다. 문제는 당시 소련이 동독이 요구한 소비재와 자원을 조달하기 매우 열악한 상황임에도.동독을 지원합니다.

그럼에도 58년 울브리히트느 마오쩌둥을 지지하면서 후루시초프를 압박하며 서베를린으로 탈충하는 동독 주민을 해결하라고 압박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늘도둑 못 때려잡으면 소도둑 되고 결국에는 탐관오리되듯이 이 게르만의 기백이 넘치는 남자 울브리히트는 소련을 거덜낼때까지 뜯어냈습니다. (자기를 박살낸지 10년만에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에요.

당시 베를린 문제는 소련으로서는 강한 입장을 취하기 힘든것이 후르시초프는 당시 서유럽과의 긴장을 높이거나 이런 행동으로 중국에게 ㅣ비판받는 위험을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어중간한 자세를 취하며 우야부야 이 문제를 덮으려고 했지만...

상대는 게르만의 싸나이 울브리히트 61년 공식 사절단을 중국으로 보내면서 가는 길에 잠시 모스크바에 들르면서 동베를린으로 건너가면서 베를린 장벽을 쌓을수도 있다는 소리를 퍼뜨림으로서 베를린으로 튀어가는 피난민의 수를 폭증시켰습니다.

옙 배짼다 배짼다. 하니까 진짜 짼겁니다.

소련대사는 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렇게 경악합니다.

"우리 동지들은 ...... 가끔 인내심을 잃고 다소 일방적으로 접근한다. 사회주의 진영 전체의 이해 관계나 특정 시기의 국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기도 한다."

번역 : 우린 봉이다.

옙 그딴건 개나줘라지요. "내 일이 급한데 무슨 형님이 앞에 나옵니까 눈꼴시럽게?"

결국 후르시 초프는 비엔나 정상회담에서 베를린에 관하 최후통첩을 보내며 피하려던 "케네디와의 대결을 시작합니다." 앞선 서독건의 배경처럼 케네디 또한 독일을 지키기 위하여 핵전쟁을 불사하자 사태는 개판 5분전으로 가볍게 한걸음 두걸음 나아갑니다. 우와아아아앙!!

결국 후르시초프는 울브리히트에게 하지말라고 했던 방책중 하나인 "베를린 장벽건설"이 답 임을 알고 실행합니다.



이 장벽은 소련이 취약한 동맹국에 묶여 있는 정도가 극적으로 표현 된 거이었다. 약소국은 제멋대로 행동하기 위해 그 취약점을 활용할수 있었다.


이 독일의 약점을 강점으로 변화시킬수 있었던건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사고를 지배하던 신뢰성에 대한
집착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제각기 보호국을 설정한 다음 자국의 명성을 그 나라에 결부시키고 나면 보호국들이 자기네 우선권을
추구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을 떼어내기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은 각자의 독일 동맹국이 독일의 이익, 즉 독일식 정책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습성에 빠지게 되었다.


-냉전의 역사 < 인용문 쓸려니까 전체가 되서 안되는 군요.. >




<사진3. 그래 시@ 니들 @리는 대로 해라>



옙... 냉전이란건 꼭 이런이유에서 가속된건 아닙니다만... 이런 시공을 넘나드는 약소국은 개근성도 한몫을 했다는것을 느낍니다. 가장 인상적인건 냉전이란 강대국과 약소국이 어떤 지점에서는 동등할수 밖에 없고 양자경쟁 관계에서 속해있는 중소국들이 어떤 이익을 얻을수 있는가를 잘보여준다고 봅니다. 핵전쟁의 위협뿐 아니라 이런 외교가 꽃이 필수 있었던건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합니다. 거의 냉전의 역사책을 배끼다 시피한 내용이니 좀더 곱씹고 싶으시면 직접 책을 살것을 추천합니다. 재미있는 책입니다.



역사밸리올리면서 생각난건데 이와 별개로...




















냉전기 배째라의 대가 프랑스를 아직 안넣었네요?






덧글

  • aspern 2012/05/21 00:23 # 답글

    나.. 나도 핵만들꺼야! 의 프랑스를 기대해보겠습니다.
  • 엑스트라 1 2012/05/21 10:02 # 답글

    프랑스는 주체적 핵강성대국의 꿈을 키워나가다가 재래식 전력이 주저앉는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 엑스트라 1 2012/05/21 10:05 # 답글

    사실 이런류의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경우는 냉전기엔 오히려 보편적인 경우가 많았져. 쿠바, 이집트, 예멘, 비엣남, 한국, 나토국가들 등등
  • 에이브군 2012/05/21 11:01 #

    에헤 냉전균형의 전반적인 갈등이나 사안에서 강대국이여서 자유롭기 힘들었다는것이 재미 있지요. 사실 이건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일회용포크나 가지고 오는 현대 주요 유럽국가와 비슷한 맥락 아닐까요. 여하튼 냉전기 미국과 소련은 이래저래 안습한점이 많았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2/05/21 11:37 # 삭제 답글

    결론 : 냉전기는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자원이 털리는 시기였다?
  • あさぎり 2012/05/21 15:59 # 답글

    체제 선전과 내부 결속을 위해 거스름돈 국가들에게까지 어느 정도 후하게 대해줄 수 밖에 없던것이 냉전 시절이니 한국과 같은 약소국 입장에선 참 좋은 시절이었죠.

    냉전이 아니었음 월남에 그리 많은 돈이 들어갔겠습니까...[먼산]
  • 에이브군 2012/05/21 16:44 #

    거스름돈!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표현이네요. 사실 맨위 원문은 남베트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소넷님보고 국관의 길을가는 대딩입니다. 앞으로 밸리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 あさぎり 2012/05/21 17:03 #

    시험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

    전 행시 준비기간과 자금사정을 저울질해보고 바로 때려쳐서... ㅋ
  • 에이브군 2012/05/21 18:06 #

    아...아니 ' 국제관계학 '말입니다;;;;;
  • ...;;; 2012/05/21 20:07 # 삭제 답글

    내... 냉전은 좋은 것이군요 (.....)
  • ghistory 2013/08/25 21:52 # 답글

    1.

    올브리히트→울브리히트.

    2.

    흐루시초프→흐루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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